이 경 수 (한국국제정치학회 기획이사, 정치학 박사)
요즘 부쩍이나 아버지를 뵐 때 마다 마음이 짠하다. 하긴 연세가 80이시니 예전만큼 기력이 성하실리야 없겠지만, 6.25전쟁 당시 총상을 입은 다리가 더욱 아프셔서 걸음걸이조차 편치 않으시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는 6.25전쟁이 발발하기 2년 전에 가난한 시골에서 입 하나 줄이자고 입대하였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였고, 그 와중에 소대장 자원이 부족하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전투현장에서 소위를 달게된 갑종장교 출신이다. 최 일선 소대장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하다가 인민군에게 포로가 되었는데, 과감히 탈출을 하는 와중에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천신만고 끝에 복귀하여 상처는 치료했지만 총상으로 인해 보병 근무는 곤란하다는 군의관의 권유에 따라 부관병과로 전과를 하였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이름 모를 능선에서 전사를 하신 수많은 전몰 용사들에 비해서 다행이라고 늘 말씀하신다. 그 분들의 목숨 값으로 이 만큼 생을 누리니 그 얼마나 다행이 아니냐고 하신다.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고, 나라가 있어야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신다.
최근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이념적 갈등이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결정한 국책 사업으로, 해당 지역주민들에 대한 여론 수렴도 거쳤고 적절한 보상도 이루어졌으며, 비단 군용 기지 뿐만 아니라 제주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크루즈 선박이 기항하는 민군 겸용 항구로 개발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국민 총 생산량의 65%가 수출에 의해 이루어지니, 가히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임에 바닷길 보호는 가히 국가 존망에 관계되는 일이다. 특히 동북아 지역은 남사군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고, 이어도를 둘러싸고 한중간에 갈등이 높아지고 있어, 유사시 즉각적인 해군 함정의 출동은 국가 이익에 큰 관건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은 역대 정부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문제이고, 비로소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결정한 사업이었다.
그 동안 우리의 먼 바닷길 보호는 주로 미국에 의존하여 왔다. 이제 겨우 최영함과 문무대왕함 등 청해부대의 활약으로 해적에게 납치될 뻔한 우리 상선을 구출하였던 “아덴만의 여명”작전의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원양해군을 담보하는 제주 기지 건설 사업이 이념 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비행기를 타고 외부 인사들이 개입하는 것이나, 기지 건설 반대를 위한 무슨 축제를 열었다는데, 이것은 조금 심한 표현으로 나라를 지키지 말자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일제 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애국지사와 6.25전쟁에서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신 전몰호국 용사들의 값비싼 희생으로 세워진 이 나라를 지키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더 좋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제발 이념의 포장지로 모든 사물을 씌우지 말자.
다, 나라를 지키자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