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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월 26일, 우리 역사가 켜켜이 쌓여가는

관리자 기자  2011.10.28 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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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미 서울지방보훈청 선양교육팀장

 

  다가오는 10.26 재보선의 결과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내년 총선, 대선의 예비전적인 이번 재보선에 선거와 관련 없는 지역구에 사는 국민들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 선거의 결과가 우리나라 정치권에 미치게 될 파장을 생각하며 선거 정국의 추이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보수적 성향의 지역과 연령층의 시민이 얼마나 투표할지, 트위터와 같은 SNS에서 선거정보를 얻고 서로 선거를 독려하는 시민들의 투표율은 얼마나 높을지, 민심의 향배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현재 시점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이 모든 것들이 투표를 통해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한표한표 익명의 시민들이 모아준 표가 누군가를 2011년 10월 26일의 주인공으로, 앞으로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는 인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2년전 10월 26일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태가 일어난 날이다. 박 전(前)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가 미완인 점은 차치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시해되었을 때 야기될 사회적 대혼란과, 분단국으로서 우리의 안보가 위협받을 가능성, 혼란의 수습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여러 정치적 문제 등 당시 직면하게된 여러 가지 국내외적 도전의 심각성은 충분히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사람의 죽음이 단지 개인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나라전체의 안위와 국민 개개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70년 전, 1909년 10월 26일은 안중근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에게 7발의 총탄으로 역사적 심판을 내린 날이기도 하다. 안의사의 저격은 단순히 나라를 빼앗긴데 대한 울분이나 개인적 복수심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안의사는 옥중 투쟁과 재판 과정에서 ‘고종황제 폐위, 을사늑약 체결, 한국인 학살, 군대해산, 동양평화 파괴’ 등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 15조를 일관되게 설파하였으며, 순국의 순간까지도 우리나라의 독립과 동양 평화라는 대의를 염원하셨다.
이로써 어린 시절부터 백발백중의 명사수였던 안중근 의사는 우리 역사 속에서 서른둘의 청년으로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다.
  이렇듯 과거의 10월 26일에는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만한 큰 사건들이 있어왔다. 그리고 이 청명한 가을, 현재의 10월 26일은 우리의 행동과 선택이 우리 사회를 어떤 식으로든 바꾸는 계기를 만드는 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적인 삶으로 연결되고 우리나라 역사를 변화시키는 차원에 얽혀 있음을 생각하니 현재를 살고 있는 나와 우리뿐만 아니라 미래를 살게 될 후손에까지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전지전능하지 못한, 유한한 조건 하에 있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늘 최고의 결과를 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선의 결과를 낳기 위해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한 곳으로 수렴된다고 본다.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 모든 국민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