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재직자 직업 만족도 조사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인 의사나 법률가의 직업 만족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국회의원의 직업 만족도는 심지어 7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만족도가 높은 직업들은 개인적 보람과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는 영역으로 대체로 교육이나 문화예술 분야였다.
성인이 되어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지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직업 만족도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자기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흔히 진로를 준비할 때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가 중심인 듯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직업을 살아가는 ‘나의 삶’을 생각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좋은 직업은 없다. 그래서 진로교육은 한 사람의 자신에 대한 이해와 직업세계에 대한 이해를 함께 도모하고 둘을 연결하려고 한다.
청소년들이 진로를 찾는다는 것이 아직은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갈 것인가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진로교육도 학과정보나 직업정보를 알려주거나 적성검사를 하는 것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진로교육의 본래 목적은 보다 근본적인 데에 있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청소년들이 삶의 길찾기를 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체계적으로 돕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성찰, 세상과 일에 대한 건강한 관점과 태도,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고민과 모색, 다른 이와의 관계맺음과 협력 작업, 실패에 대한 내성과 도전적인 목표 설정, 다양한 직업세계에 대한 이해, 이런 것들이 모두 진로교육이 추구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일은 점수 경쟁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과 협력을 통한 배움 속에서만 가능하다. 세상에 대한 체험과 다른 이들과의 협력 속에서 나와 내가 살아가는 사회, 이 둘 간의 연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교육강국이라는 핀란드의 전 국가교육청장 에르끼 아호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개성과 다양한 재능을 발현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교를 덜 경쟁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협동을 통해 청소년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이 교육 본연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무한 경쟁은 결국 모두를 패배자로 만든다. 경쟁적 교육에서 자신을 패배자로 인식한 학생들은 폭력적이거나 무기력하다. 모든 이가 다양한 개성을 발휘해야하는 지식기반사회에서, 다수를 불건강하게 만드는 교육이 어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결국 경쟁적 교육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다른 이와 건강하게 관계맺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개발해 간 학생들만이 건강할 수 있으니, 교육경쟁력의 답은 다양한 개성을 살리고 협력적 삶의 능력을 길러주는 진로교육에 있다.
진로교육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사회적으로 광범하게 동의를 얻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진로교육을 학교교육의 중요한 역할로 인식하고 다양한 지원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진로탐색기에 있는 중학생들이 직업현장에서 직업인들을 직접 만나 조언을 듣고 일도 함께 해보는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계획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서구국가들뿐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청소년 직업체험은 중요한 진로교육 방식으로 정착되어왔다. 직업체험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현실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에 도전해보고, 기성세대와 안전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미래를 탐색해보도록 하는 중요한 교육활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진로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학교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직업인들과 일터가 나서주어야 직업체험이 가능하듯 우리 사회 곳곳이 청소년 진로교육을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는 일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정종화 주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