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보훈청 보훈과 이진수
세계 각국에서는 무명용사의 무덤과 그들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세우고 보존한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나라를 수호한 이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것은 후손된 자로서의 당연한 의무이고 책임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호국의 받침대를 세움으로써 국가의 근간이 되는 나라사랑정신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함양시키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대표적인 호국보훈의 불꽃으로는 미국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 케네디 대통령 묘역에 설치된 ‘꺼지지 않는 불꽃’과 프랑스 파리 개선문의 ‘기억의 불꽃’, 호주 브리즈번 안작공원에 설치된 ‘꺼지지 않는 불꽃’,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꺼지지 않는 불꽃’ 등이 있다.
국가보훈처도 호국보훈의 불꽃을 건립하고자 2011년 건립 타당성 조사를 하였고, 2012년 국민참여 온-오프라인 투표 및 전문가 자문을 거쳐 건립 최적지로 ‘광화문 광장’을 결정하였다. 6.25전쟁과 월남전 등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자신을 희생한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함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불꽃 시설이 광화문 광장 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 등 기존 조형물과 어울리지 않고, 관리상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1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을 호국보훈의 불꽃 최고 적합지로 선정하였다. 그 이유로는 수도 서울의 심장이라는 상징성도 한 몫 했을거라 생각한다. 조선이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조선과 대한민국을 거치면서 명실상부 나라의 심장 역할을 해 왔다. 광화문 광장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현장이며 산증인이다. 그러한 곳에 역사의 엑스트라를 담당했지만, 가장 위대한 희생을 했던 무명용사를 위한 조형물이 들어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동상이 있다고 해서 호국보훈의 불꽃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조금 궁색하다. 오히려 그 두 동상이 있는 곳에 호국보훈의 불꽃이 건립이 되어야 한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며,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위인이다. 한 분은 조선 문화의 황금기를 연 장본인이며, 한 분은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을 때 나라를 구한 성웅이다. 백성들을 위한 위민정치를 펼쳤던 세종대왕이나 삼도수군통제사이면서도 병사 하나하나를 아끼었던 이순신장군의 뜻을 헤아려 본다면, 무명용사를 위한 호국보훈의 불꽃은 당연히 두 동상 사이에 들어가야 한다. 그 분들도 무명용사를 기리는 호국보훈의 불꽃이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다면 두손 들고 환영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오랜 외부의 침략을 받아왔고, 그런 위기 시에 분연히 맞서 싸운 ‘역사에 이름없는’ 백성들에 의해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들, 동학혁명 이후 나라를 되찾고자 일어선 의병들,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일제에 저항코자 만주 등 해외로 떠난 이름없는 독립군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젊은 영혼들 모두 이름없는 용사들이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처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고 흔적을 남긴 위인을 기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사에 이름은 없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한 무명용사들도 기리고, 추모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역사는 이 이름없는 백성들을 기록하는 데 소홀히 해 왔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있는 이 때 한번쯤은 이 이름없는 용사들을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지 않을 까 생각한다. 물론 그 출발점은 광화문 광장에 호국보훈의 불꽃이라는 샘터를 건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