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 섭 (민주평통 영등포구협의회 고문)
지난 3월 한 달 동안 국민들은 행복했다. 한국야구가 야구의 월드컵이라고 불리는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16개 참가국중 메이저리거가 즐비한 강팀들을 모두 꺾었고, 특히 일본과는 이번 대회에서만 5번을 맞붙어 2승 3패라는 팽팽한 승부를 벌였다. 일본 간판타자 스즈키 이치로의 연봉 1,800만 달러(한화 약 250억원)는 한국 대표팀 전체 몸값의 세배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선수들이「저비용 고효율」의 야구를 얼마나 잘 펼쳤는가를 알 수 있다.
특히, 준결승에서 맞붙은 베네수엘라와 한국의 주전 9명의 연봉총액 차이는 무려 41배나 됐다. 베네수엘라가 1200억원이 넘는데 비해 한국은 29억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몸값만을 비교했을 때 한국이 일본과 베네수엘라를 차례로 꺾은 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한국야구가 보내온 승전보는 나라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애국의 스포츠, 호국의 스포츠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준 쾌거였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국민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프로골퍼 박세리가 나타나 맨발 투혼을 발휘하며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했다. 그 뒤에도 박찬호, 박지성, 김연아 등 스포츠 스타들의 빛나는 활약에서 국민들은 많은 위로를 얻었다. 올해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선 야구대표팀이 국민들에게 활기와 새 희망을 줬다는 점에서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또한 한국야구가 대한민국 브랜드를 세계에 과시한 가치를 상상해보면 더욱 신바람 나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야구가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팀워크와 희생정신으로 일군「위대한 도전」은 국민들에게「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기를 불러일으킨 승전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자심감과 활기는 3월이 다 가기 전에 터진 정치권 부패의 스캔들로 인해 퇴색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박연차 리스트」라는 이름아래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는 정치권 스캔들로 인해 정치권이 얼어붙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절대적인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뿌린 돈에 양심의 눈이 멀었던 권력자들 리스트는 끝도 없는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광재 국회의원이 구속된 것을 비롯 한나라당의 대권 기대주로 꼽히던 박진 의원도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 때의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도 걸려들 정도로 전·현 정권과 입·사법·행정부 실세들이 줄줄 엮어 나오고 있다. 이번 검찰의 수사방향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 알 수 없지만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주도세력인 386실세들이 정치적 생명의 치명타를 입을 공산이 짙다. 국민들은 그토록 도덕성을 강조했던 참여정부 인사들 부패에 큰 충격을 받았다. 깨끗한 정치를 다짐했던 이명박 정부 인사들도 달라진 게 없다는 실망감 또한 크다.
문제는 지금까지 드러난 부패 스캔들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에 휘몰아 칠「박연차 리스트」쓰나미가 얼마나 큰 충격파를 몰고 올지 모른다는 점이다. 현재는「박연차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정·관계 인사 70여명이 박회장 입만 바라보며 떨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태는 로비의 귀재라고 했던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의 로비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1997년 1월과 너무나 흡사하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실세였던 홍인길 전 청와대 수석을 비롯해 권노갑, 황병태, 정재철 의원에다 김우석 내무장관과 돈 몇 푼에 양심을 팔았던 정신 나간 은행장들까지 감방으로 끌려갔고, 급기야 김영삼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씨가 죄수복을 입고, 서울 구치소 독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사건은 대충 마무리 됐다.
당시 화제가 된 것이 사과박스였다. 정태수씨는 사과박스를 미끼로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확인시켰다. “빳빳한 새 돈으로 사과박스에 1만원권 지폐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말에 국민은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침을 뱉었다. 이번 검찰수사에서 드러난 점도 비슷하다. 그토록 도덕성을 강조했던 참여정부의 386실세들이 철저한 우군이라고 믿었던 박연차 회장이 내놓는 검은 돈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날름날름 받아 챙긴 도덕성의 결여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 때문에「박연차 리스트」의 전모가 드러나면 우리 사회의 권력층은 최악의 신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인내의 한계를 느끼는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지금과 같은 후진국형 부패를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 권력층의 광범위한 부패가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권력층의 진정한 참회가 필요한 때이다. 특히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뼈아픈 자기반성과 함께 환골탈태의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다. 그러자면 우선 부패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을 성역 없이 조사해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해야한다. 또한 정치권은 진정한 자정노력을 실천함으로써 국민의 신뢰와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런저런 제도개선보다 권력층 부패를 막기 위한 의식혁명이 중요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