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섭 (민주평통자문회의 영등포구협의회 고문)
지난 1999년 4월 2일부터 5일까지 금강산을 다녀왔다.
현대아산에서 운영하는 현대 봉래호를 타고 속초항을 출발해서다. 첫날에는 구룡폭포 관람을 시작으로 장전항에서 온정리 신계사터, 목련관, 양지대, 삼록수, 금강문, 옥류동, 무대바위, 연주담, 비룡폭포를 거쳐 우람하고 감탄사가 절로나오는 구룡폭포에 다달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폭포였다. 다음날 만물상 코스에 올랐다. 역시 장전항에서 온정리를 거쳐 관음폭포, 육화담, 만상정, 신선암, 귀변암, 절부암, 망산천, 천선대에 이르기까지다. 몹시 힘든 코스였다. 생전에 가볼 수 있을까 하고 상상만 하던 금강산을 정복하고 나는 어쩔 수 없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다.
2003년 6월에 시작한 개성공단 사업과 2007년 12월에 시작한 개성관광. 고려 500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개성을 관광했다. 영등포에서 민주평통 11기에서 평통위원을 그만두었거나 13기에서 부활된 2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서다.
12월19일 대통령 선거가 막 끝나고 다음날인 20일 새벽 5시에 집에서 출발해 고려 500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개성을 관광했다. 이날 개성 관광길에는 우리 일행을 비롯한 충남 당진에서 올라온 전 평통 당진군협의회장 성지문씨 일행도 끼어 있는 등 약 30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관광이었다.
오전에 박연폭포와 관음사를 관광에 이어 점심에는 개성남대문 뒤편 지남산 입구에 있는 통일관에서 13가지 반찬이 있는 개성음식을 먹었다. 이 식당 앞 큰 길위에 꽤 먼 거리에 위치한 김일성 주석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오후에는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하고 돌아오다가 그의 아들 이방원에게 철퇴를 맞아 숨진 선죽교와 그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조선 왕조의 영조와 고종이 각각 세운 표충비, 그리고 정몽주의 생가인 숭양서원을 방문했다. 다음으로 고려시대의 최고의 교육기관인 고려 성균관의 고려박물관을 둘러보고 개성공단 도로를 버스로 통과한 후 서울로 돌아왔다.
개성관광에 있어 북측의 제한이 많았다. 지정된 관광지외에서는 사진을 못 찍게 했다. 버스 이동 중에는 사진을 촬영할 수 없었고, 동네 입구에 보초를 서는 군인뿐만 아니라 도시의 주택이나 지나가는 사람들도 찍지 못하게 했다.
지정된 관광지 외에는 북한 사람들과 일체 접촉이 없는 고립된 격리관광이었다. 거리에는 자전거를 탄 사람은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차량의 왕래는 거의 없었다.
나는 버스에 동승한 안내원에게 물었다. 왜, 우리가 가는 길목마다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거냐고. 안내원의 대답인즉,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테러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답이었다. 안내원은 무척이나 친절했다. 그와의 대화에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민의 정을 느꼈고 이나마 기이 열린 문이 더욱 발전해서 활짝 열리면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러나 이제 그나마도 문이 닫혔다. 금강산이 닫혔고 개성이 닫혔다. 이제 남북간의 대화는 좀처럼 풀릴 것 갖지 않다. 금강산이나 개성을 다시 가보고 싶다. 지금은 몹시 아쉬운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