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칼럼 - 소통<疏通>

관리자 기자  2008.06.19 04:22:00

기사프린트

소통<疏通>

 

김 윤 섭 (본지 객원기자)

 

 소통<疏通>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않고 통함” “생각하는 바가 서로 통함”이라는 뜻이다. 만사<萬事> 소통이 원활<圓滑>해야 한다. 사람의 경우 육체는 신경과 혈액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신체의 불수<不隨>를 당하기 쉽다.
정신 또한 마찬가지다. 감정. 의지. 충동이 원활하지 못하면 사고<思考>의 장애로 끝내는 인격적 변조<變調>에 이르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또한 의사소통<意思疏通>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 논쟁이 싸움으로 발전한다.
가정도 가족간의 대화가 없을 때 가정 파탄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미얀마의 해일과 중국 스촨성 지진, 잦은 토네이도의 발생, 빙하의 해빙으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 해수온도의 상승등으로 인한 자연재해와 재앙도 인간과 자연의 소통부재에 기인한다. 상생보다 이기적인 인간의 일방적인 독주가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회도 여당과 야당이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근채 정쟁<政爭>으로 개원도 못한 채 국회 기능이 전신불수<全身不隨> 상태다. 이 또한 불소통<不疏通>의 결과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 간다. 대통령은 국민의 정서를 무시한 채 브레이크 없이 일방 독주하다 국민이 제동을 거는 사태에 이르렀다.
취임 이후 경부 대운하, 영어 몰입교육과 미국산 소고기 수입 등 일방적으로 추진 하려는 정책마다 많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소통이 안된다. 대화가 없다.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은 등한시 한 채 국민의 이해만을 바란다.
소통의 문제다. 참다 못한 국민이 길거리로 나왔다. 촛불을 들고, 촛불은 소통의 도구다. 영혼과의 대화를 위해 촛불을 켠다. 오죽 답답했으면 제단<祭壇>에 올려지는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할까? “대화 좀 하자”고 그러나 이 정부는 버스와 콘테이너로 장벽을 만들어 안면몰수하고 대화를 거부하며 물 대포로 입을 봉쇄하려고 한다.
이광경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현실이다. 한국은 IT 강국이다. 국민이 정보에 빠르다는 이야기다. 국민은 알 만큼 다 아는데 이 정부는 국민을 너무 모른다. 늦게나마 국민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엿 보인다. 다행스런 일이다.
이 시간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아니 이제는 켜고 끄는 상황이 아닌듯 싶다. 잠시 내려 놓을 수는 있어도... 이젠 촛불 좀 내려 놓을 수 있도록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행여 정부를 소로 보는<牛耳讀經>국민과, 국민을 말로 보는<馬耳東風>정부가 돼서야 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