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순 원(한국가정교육상담소 소장)
‘고교평준화 정책’은 도입 당시 극심한 과외 해소와 치열한 고입경쟁 완화를 목표로, 실시 초기에는 교육수혜자를 위한 평등이니 기회균등이니 하는 이데올로기 차원이나 교육의 본질적 문제에 접근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약발이 좀 있는가 싶더니 평준화로 인해 우리 풍토병인 사교육은 고질의 불치병으로 더욱 고착 만연되고 말았다.
과외 유발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아닌 평준화라는 무기로 밀어부쳤기 때문에 결국 잡초 제거용 제초제를 무차별 살포해 환경 오염시킨 꼴이 되었고, 평준화를 불신하는 일부 계층의 ‘내 자식 차별화’라는 욕구 충족을 도외시하고 외면한 출발이었기에 비밀과외가 성행하는 등 온갖 불협화음을 잠재울 수 없었다.
평준화에 발맞추던 과외금지의 위헌판결로 초 중 고생의 학원수강이 전면 허용되어 과외금지 조치가 막을 내렸고 오히려 평준화가 극성과외를 부추겨 사교육 조장의 주범으로 몰리게 되었다.
학교는 사교육을 위한 휴식처와 교실은 취침실로 전락하여 졸업을 위해 형식적으로 시험을 보는 곳이요, ‘공부는 사교육장에서…’라는 등식하에 학교에서와 같은 과목을 선행하거나 반복 공부로 공교육을 훼손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은 사교육을 당연한 교육과정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으며 교사는 법으로 규정한 시간만 근무하는 노동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저물어가는 사회주의국가나 산업화시대에나 걸 맞는 획일적 교육을 사교육을 핑계로 평등주의를 앞세워 전인교육이라고 주장하다가 사교육에 볼모로 잡힌 꼴이 되었다. 따라서 기형적 도입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시행했으니 쉽사리 뒤집지도 못하고 전전긍긍이다.
황폐한 공교육으로 인해 평준화 정책이 유지되는 한 사교육 없이는 계층상승, 계층상속, 계층이동은 물론이요 뜻한바 좋은 대학 입학이 어렵다고 국민간 암묵적 합의로 나타났다.
평준화 교실에서 잠자는 토끼가 아닌 바에야 토끼와 거북이 경쟁은 그 결과가 뻔하고 구조적으로 우등생과 열등생이 혼재된 교실에서 제대로 수업이 이루어질 턱이 없다. 평준화가 평등이라는 허구 속에 우수생과 열등생 모두 수혜자가 못되고 피해와 불이익을 당하는 지극히 불공평한 제도이다. 무늬와 색깔 및 껍질과 형식 그리고 선발만 평준화이지 씨앗과 속살, 내용과 현실은 지극히 불평등한 제도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성화에 밀려 사전에 시험지를 유출하거나 시험문제를 공개하여 많은 학생을 상위등급으로 성적을 조작하는 등 비교육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몰교사적인 행태도 그릇된 평준화의 산물임은 물론이다.
선진국에선 이미 종언을 고해 무한경쟁 속 정당한 경쟁이 지구촌 국가 교육의 방향인데, 이에 제동을 걸어 평준화로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흘러간 물레방아 타령은 아닐런지...
평준화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미비점 보완책(다양성 및 수월성 제고와 학교선택권 확대란 미명아래)으로 내놓은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도 본래의 설립 목적에 반하여 입시 일류고로 전락하여 옥상옥이고 특수계층을 위한 학교라는 비난에 직면하고 말았다.
평준화의 틀 속에서 새 정부가 제시한 기숙형 공립고, 특성화 고교(일명 마이스터고), 자율형 사립고 설립도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감경책에 미흡한 교언영색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차제에 평준화 제도의 고수나 리모델링이 아니라 개인의 실력 배양과 극대화, 국가경쟁력 제고, 시대적 흐름에 따라 심각하게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술수나 호도책으로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이제는 여론수렴을 통해 공론화할 시점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