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중·고등학교 20회 졸업식
60년만에 한 푼 최고령자, 부부 졸업생...
노장년층과 소외된 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서울 성지중·고등학교 학생 770명이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민회관에서 졸업식을 가졌다.
이날 졸업생들은 대부분 제때 배우지 못한 ‘한’을 품고 입학한 학생들이다. 10대 때 결혼으로 학업을 중단했던 70대 할머니, 문제아로 찍혀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 온 탈북자 등 모두가 눈물겨운 사연의 주인공들이다.
먼저 이날 식전행사로 비보이 ‘THE Art’팀의 축하 댄스가 펼쳐졌고, 이어 인기가수 F.T아일랜드, 2NB 솔지 등의 축하공연으로 졸업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축제의 장을 만들었다. 특히 이날은 14회 졸업생인 가수 배일호씨가 참석해 졸업생들을 격려했다.
60년만에 얻은 고교 졸업장
중·고교 4년 과정을 마치고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에 진학하는 전규화(78) 할머니. 이번 졸업식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최고령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4시간의 등하교 시간에도 결석과 지각 한 번 하지 않는 향학열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경북 영주 산골마을 출신으로 17살 되던 해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고, 이듬해 시집을 가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했던 전 할머니는 60여년 만에 배움의 한을 풀었다.
전 할머니는 이날 졸업식에서 “늦게나마 60년의 한을 풀어 더없이 기쁘고, 지금도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배우지 못한 한을 풀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밖에 명지전문대 부동산학과와 정화미용예술학교에 진학하는 고영식(59), 오말남(59·여)씨 부부. 이들 부부는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으로 부친을 여의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는 고씨는 배우지 못한 것이 뼈에 사무쳐 4년 전 아내와 함께 50여년 만에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중고교 시절 무단결석과 가출, 폭력으로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찍혀 공부를 그만둔 뒤 사이버 범죄로 구속되기도 했던 송모(19)군은 올해 모 대학 컴퓨터학과에 합격했다.
한편 국내 컴퓨터 게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게임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하려 했던 김택용(18)군, 또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김재훈(19)군도 자랑스러운 졸업생들이다.
지난 2002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 김영진(24)씨는 중·고교 과정을 밟는 동안 한식·양식 요리자격증을 따고 경기대 호텔조리학과에 진학한다.
지난 2005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조문희(22·여)씨도 단국대 간호학과에 입학해 간호사를 꿈꾸고 있다.
이 학교 함익주 교사는 “온갖 어려움을 뚫고 목표를 이룬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될 만한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성지고는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한 사람들을 위한 야학에서 출발해 지난 2001년 도시형 대안학교로 지정됐다. 노장년층과 소외된 청소년 등 학업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과 제도권 학교에서 적응을 못한 학생들이 모인 학교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특성화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있다.
한편 이날 졸업식에서 김한태 교장은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배움의 열정을 보여준 졸업생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나아가 국가에서 반드시 필요한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주위에서 학교에 진학 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지속적으로 지도해 인재양성에 힘쓸 것”을 다짐했다. / 오인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