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득(호서대학교 호서교육문화원장, 민주평통 부회장)
넛크래커니, 샌드위치 경제니 하는 말이 다시 인구에 희자되고 있다. 넛크래커(Nut-Cracker)라는 말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일어나기 직전 미국의 한 컨설팅 기관이 “한국은 비용의 중국과 효율의 일본의 협공을 받아 마치 넛크래커 속에 낀 호두처럼 되었다”고 한 데서 나왔다. 이 말 속에는 당시 한국이 도저히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빈정거림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보란 듯이 정보기술(IT)분야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일부에서는 이를 가리켜 ‘가격은 일본보다 낮고, 기술은 중국보다 앞섰다’고 하여 역 넛크래커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명암
연초에 우리는 아주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IMF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년째 되는 해에 위기를 거뜬히 극복하고 2만 달러 시대에 돌입한다니 정말 굿 뉴스였다. 그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외환보유액은 2,400억 달러에 달할 정도이고, 산업구조도 굴뚝산업 중심에서 IT(Information Technology), CT(Culture Technology), BT(Biology Technology) 쪽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구조조정의 뼈아픈 시련을 이겨내고 기사희생한 기업들은 사력을 다해 수출을 견인해 마침내 수출 3,000억 달러 시대를 열어젖혔다.
하지만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는 법이다. 이런 뉴스에 마냥 환호작약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 더 잘 알고 있다. 과거에 이뤄놓은 업적이 10년~20년 후의 미래까지 보장해줄 만큼 국제 경쟁의 세계가 절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이건희 삼성 회장은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면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5~6년 후엔 혼란스러운 상황이 올 것”이라고 한국경제에 대해 쓴소리를 한 바 있다. 실제로 한 경제연구소가 한·중·일 3국 약 2,000여개 기업의 경쟁력을 조사해본 결과 우리나라 기업들은 해외수출시장에서 중·일 기업에 비해 규모의 열세, 노동생산성 저조, 기술혁신의 부족 등 3중고에 시달리면서 샌드위치 경제현상이 심화되고 있었다.
100만 명 백수시대
무엇보다 계속된 투자부진으로 성장잠재력이 바닥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5년 동안 경제성장률은 세계 평균보다 1%포인트 정도 밑돌고 있고, 이는 곧바로 실업난으로 이어졌다. 공식 통계로는 청년실업률이 7.9%라고 하지만 구직 포기자를 포함하면 실질적인 청년실업률은 20%대에 이른다고 한다. 한창 일해도 힘이 남아돌 이 나라 젊은이 중 100만 명이 놀고 있는 것이다. 실업이 늘면서 가계소득도 얼어붙었고, 정부가 반드시 시정하고 말겠다고 지난 4년 동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는데도 불구하고 소득계층간 양극화 문제는 점점 더 심화되고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외환위기 이후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성장둔화에 있다고 진단하고, 투자를 촉진하고 성장 동력을 되찾아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만이 소득 양극화를 막고 중산층을 되살리는 방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 고용과 소득이 늘면 중산층의 빈곤층 추락과 계층간 양극화는 대부분 저절로 해소된다는 말이다. 결국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인 것이다.
기적 일궈낼 도전정신 필요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10년 전 우리 모두가 위기를 떨쳐버리려고 한 덩이가 되어 열심히 뛰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가 없는 것이다. 이 순간 10년 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여당과 야당, 정부와 언론, 노와 사, 정규직과 비정규직, 나와 너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대립하면서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고 있다. 투자는 하면 되고 떨어진 성장잠재력은 다시 충전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 10년 전 벼랑에 내몰렸던 그 때 그 마음가짐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내리막은 피할 수 없다. 이제 다시 한 번 뜻을 모으고 마음을 하나로 합쳐 기적을 일궈낼 도전정신이 필요한 때다. 늘 하는 말이지만 엄연히 ‘위기는 기회’인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