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윤 섭 (본지 객원기자)
4월도 이젠 보내야한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지나고 나서야 주마등처럼 스치는 4월의 의미를 스케치한다.
3월처럼 분주하지도, 5월에 비해 주목 받지 못하는.... 그래서 다소 무미건조해 보이기까지 한, 설상가상 4월은 잔인한 달로 불려 지기도 한다.
인생으로 치면 팔자도 기구하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과는 상관없이 4월은 봄의 중심이며 또한 봄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아마 여자의 마음이 4월의 계절적 특성을 빼 닮은 것은 아닐까? 어찌 여자에게만 한정된 일 일까마는.... 초겨울 같이 차가운 새벽, 낯은 여름 같이 뜨겁고, 해가 지면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어찌 사람의 마음인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연유로 연인들의 사랑 또한 부침이 심하다. 4월이 만들어 내는 각본 없는 연극은 아닐까?
보다 특별한 사건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고난주일과 부활주일이 4월에 있음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얼어 있던 대지를 녹여 싹을 틔우고, 메마른 가지에 물을 올려 꽃을 피우는 계절, 창조주의 섭리가 가장 충만한 계절이라고 하겠다.
시인 엘리엇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듯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부활의 환희는 산모의 출산처럼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아마도 4월은 연중 가장 많은 꽃을 피우는 계절 일게다 가장 화려하지만 주목받지 못한다. 5월이 신록의 계절로, 가정의 달로, 오월의 신부로 부러움의 대상이라면, 3월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새내기들의 들뜬 마음처럼, 첫날밤 신부의 발그레한 볼처럼 새로운 출발을 위해 세상을 온통 설레게 한다.
그래서 4월은 “소나무꽃(松花)”을 닮았다.
4월이면 어김없이 피는 꽃/그 봄에 송화를 만난다/ 장미꽃처럼 화려하지도/포도처럼 달콤하지는 않지만/추억 속에 잊지 못할 이름이다/정리하지 못한 정(情)이/가슴이 시리도록 아픈 상처를 남긴/잔인한 4월/밀어 내려 애써도/도망가려 외면해도/밀물처럼 밀려드는 그놈의 情을/흐르는 세월에 맡겨두고/송화 가루 따라 떠납니다/구름이 너무 오래 머물렀나 보다/아! 그래서 운정(雲停)인가/꽃가루가 지천에 널렸다. 헤픈 4월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