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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 지도층과 공직자부터 솔선수범해야

관리자 기자  2010.09.15 15: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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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영 기 한양전문학교 학장(교육학 박사)  

 

요즘의 국정화두는 ‘공정한 사회’인데 그 기준과 적용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들이 쏟아지고 있다. 공정한 사회란 한편으론 사회적 약자에게는 불이익을 주지 않고, 공평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의미와 다른 한편으론 기득권층이나 사회적 강자에게는 반칙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포함한다고 볼 때 높은 위치에 있는 지도자와 공직자들이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말 학자였던 이규보 선생의 일화를 통해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지도자와 공직자의 자세를 살펴보고자 한다. 유아무와인생지한(有我無蛙人生之限) 즉 ‘나는 있으나 개구리가 없는게 인생의 한이다’란 뜻이다. 고려 말 시대 유명한 학자이셨던 이규보 선생께서 몇번의 과거에 낙방하고 초야에 묻혀 살 때 집 대문에 붙어있던 글이다.
이 글에 대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여행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다행히 민가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 선생)이 조금 더 가면 주막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런데 그 집 대문에 붙어있는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했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게 인생의 한이다. 개구리가 뭘까...?’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만큼의 지식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안잡혔다. 주막에 가서 국밥을 한그릇 시켜먹으면서 주모에게 외딴집(이규보 선생집)에 대해 물어봤지만, 과거에 낙방하고 마을에도 잘 안나오고 집안에서 책만 읽으며 살아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한 임금은 다시 그집으로 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루저녁을 묵어갈 수 있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주인의 글을 읽는 소리에 잠은 안오고 해서 면담을 신청했다.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겼던 ‘유아무와인생지한’이란 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을 때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후에 노래시합을 하자”는 거였다.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노래를 잘하기는 커녕 목소리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하다니, 하지만 월등한 실력을 자신했기에 시합에 응했다. 그리고, 3일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에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두루미한테 갔다주고 뒤를 부탁한거다.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곡씩 부르고 심판인 두루미의 판정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목소리로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두루미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말은, 이규보 선생이 임금한테 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한 말이다.
이규보 선생 자신이 생각해도 그 실력이나 지식은 어디 내놔도 안지는데 과거를 보면 돈이 없고, 정승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꼭 덜어진다는 거다.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두루미한테 상납한 개구리같은 뒷거래가 없었기에 결국은 번번히 낙방해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은 이규보 선생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하기에 자신도 과거에 여러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인데 며칠후에 임시과거가 있다해서 한양으로 올라가는중이라 거짓말을 하고 궁궐에 들어와 임시과거를 열 것을 명하였다 한다.
과거를 보는날, 이규보 선생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걸은 시제가 ‘유아무와인생지한’이란 여덟자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 선생은 임금이 계신곳을 향해 큰절을 한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를 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먼 옛날의 조그만 일화이지만 현재의 우리 모두에게도 타산지석이 되는 글귀다. 최고의 위치에 있는 지도자나 공직자가 사리사욕과 불편부당에 치우치지 않고 초야에 묻힌 인재를 구하고 등용할 때 훌륭한 인재들을 발굴할 수 있고, 나라는 올바른 길로 나아간다는 훌륭한 일화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와 같이 인재등용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우리의 국정기조인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더욱 명심해야 할 글귀가 아닌가 싶다.
공정성이 낮아지면 경쟁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보아야 돌아오는 보상이 없다는 의식이 팽배하여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가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그리고 복지사회의 동시 달성은 공정한 사회의 구현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삶의 최소한의 기본 수단과 균등한 교육 기회의 제공, 그리고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에 대한 사회안전망 제공은 공정한 사회의 최소 조건들이다.
이러한 공정한 사회가 정착되려면 최고 위치에 있는 지도자와 공직자부터 공과 사를 가릴 줄 알아야 하고, 공동체가 정한 법과 원칙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지켜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지도자를 믿고 따를 것이며, 통합과 화합의 정치가 실현될 것이다.
남이야 어떻든 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질서준수 의무도 도외시하는 정신과 생활의식으로는 공정한 사회 구축을 통한 명실상부한 선진사회의 달성은 어려울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공정한 사회를 정착시키기 위한 기초의식를 모든 국민 개개인이 탄탄히 다져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인 질서의식 정착과 공동체 의식의 함양, 기회의 공평한 부여와 법률과 원칙 적용의 형평성, 서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정착될 수 있도록 최고 위치에 있는 지도층과 공직자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