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향한 나의 모습과 멀고먼 인간의 한계를 느끼며...
속초를지나 고성에 도착하니 남쪽의 최북단 금강산 콘도가 우리를 맞이했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남측출입국을 통과한 후 육로를 통해 북측으로 향하는 도중 손이 옆걸음하는 북측 병사의 검문이 기분을 상하게 했지만 내심 한민족이라는 생각에 접어 두기로 했다.
금강산 온정각에 도착한 일행은 다음날 있을 통일기원 걷기대회 행사 준비를 위해 고 정몽헌 현대회장의 추모건립비가 있는곳에서 북측 관계자와 행사진행에 대한 논의를 했다. 새삼 인생의허무함과 거대한 현대가의 공헌을 느끼면서 말이다.
금강산에서 첫날밤을 맞았다
아내의 잔소리를 벗어난 홀가분함과 같이왔으면 좋았을걸 하는 양비론이 씁쓸한 모습과 함께 술잔에 가라앉는다.
온정각 맞은편에 자리한 소사봉이라는 곳은 남쪽의 포장마차를 흉내낸 곳이다.
남자 지도원 한명, 참새구이 담당 한명, 회뜨는 주방장 한명, 계산하는 사람과 서빙하는 사람 세명, 우리를 감시하는듯한 낯모르는 사람 한명, 그리고 수족관 비슷한 진열대 탁자 8개가 놓여있다.
한병에 3불하는 평양소주와 29불하는 광어 한마리, 1.5불짜리 참새구이 6마리를 한꺼번에 시키니 그들은 무척 좋아했다.
남쪽식으로 계산하면 한사람 봉급이 4~5십불이니 이들은 남쪽의 귀족이라며 신기해 했다. 네명이서 팔만원이면 여의도 횟집의 1인분인데 말이다.
그러나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많이 시키면 돕는거라고 착각하며 건방떤것은 아닌지 그날밤 나는 쉽게 잠을 청하지못했다. 남자들은 키가 작고 검은피부에 야위었지만 남남북녀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여인들은 희고 아름다웠다.
“설친잠에 새벽을 원망하고 있는데 잘난체 시작인가?”
오늘 오후에 해금강에 가는데 무척 깊고 멋지다누먼, 아마 우리쪽 소양강보다 나을라나! 쏘가리매운탕에 소주 한잔 했으면 좋겠구만.. 지역에서는 내놓으라 하는 친구의 수다다.
얼마전 선거가 있었는데 사무장이 원고를 써주고 이 친구는 열심히 외웠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단상에 올라 연설할 찰나에 갑자기 비는 내리고 원고는 바람에 날리고, 결국 이친구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 오늘날 원고를 그대로 읽은 바로 그친구의 멀쓱한 출발이었던 것이다.
해금강이 강이라니! 그럼 해금강이 강이면, 난지도는 섬이고 을지문덕 장군의 고향은 을지로 입구고, 삼천 궁녀는 삼천포에 빠져 죽었겠네 그려, 핀잔을 뒤로하고 우린 해금강 호텔로 향했다.
북고성 지평선 넘어로 한폭의 그림이 누워있고 자태를 뽐내는 금강산의 모습은 절경 그자체였다. 일만 이천봉 셀수는 없었다. 단지 삼십리 고갯길을 걷기위해 신발끈을 동여 멘다. 통일을 향한 나의 모습과 멀고먼 인간의 한계를 느끼며...
그래도 우린 항상 내 자신을 아끼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나를 위하고 사회를 위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룻밤이 지났을 뿐인데 왠지 낯설고 서먹하다.
걸어서 온정각에 도착하니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
한그릇에 10불하는 우거지 갈비탕의 맛은 꿀맛이었다.
얼마전 선배가 동해로 전근을 가서 그곳의 경치를 같이 볼 기회가 있었다. 고갯녘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의 풍경은 일품이었고, 가까이서 밟은 땅들은 정말 포근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왜 겨울연가를 볼때는 느끼지 못했을까?
이곳은 배용준이 최지우에게 눈물의 키스를 한 바로 촛대바위였다.
이에 질세라 자태를 뽐내고 서있는 해금강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아니 달고 오묘하다고 얘기해도 주님이 노할것 같지않음, 바로 그것이였다.
작지만 야무지게 생겼다는 내눈 사이로 금방이라도 푹빠져 버릴것 같은 바위가 누워있고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사이로 태양이 춤을 추고, 봄은 왔다고 치마에 바람이 얹치고, 남쪽의 동해가 이곳 해금강을 질투하여 북쪽을 바라보고 서있구나, 설악과 금강이 쌍벽을 이루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