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본지 칼럼리스트)
세월유수라 했던가? 유난히도 춥고 긴 혹한에 언제 봄이 올까 싶었는데 어느새 경칩이다. 봄맞이 행사로 동리가 분주하다. 문득 자상자 인하지(自下者 人下之), 자하자 인상지(自下者 人上之)라는 말이 떠오른다. 스스로 높이고자 하는 자는 남이 낮추고, 스스로 낮추고자 하는 자는 남이 높인다는 가르침으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이르는 말이다.
오늘 우리가 명심해 스스로 경계해야 할 귀한 교훈이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기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특히 선거를 통해 대소 권력을 가진 선량들은 자신을 낮추는 일은 그저 주민의 마음을 사는 도구로 밖에 생각지 않는 것 같다.
모두들 선거 때만 되면 이구동성으로 주민의 공복(公僕)이 되겠다거나 주민의 큰 머슴이라는 등 하인 경쟁에 열을 올리다가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개 눈 감추듯 상전이 되어 그 많던 머슴은 간데없고 상전으로 넘쳐나는 기현상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머슴이 되겠다던 공약은 그저 표를 얻기 위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빌 공자 공약일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자치의 본질인 각동의 주민자치위원회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각동의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자치제도의 가장 기초가 되는 풀뿌리 제도이다. 말 그대로 주민에 의한 자치를 하여야 한다.
그러나 주민자치위원회 조례는 구의원이 주민자치위원회 당연직 고문으로 만들어졌다. 스스로를 높이는 조례다. 자신의 머리에 스스로 관을 씌우는 우를 범한 것이다. 많은 주민자치위원들도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주민자치위원을 구성하는 주민자치위원 심의위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주민자치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함은 물론 주민자치를 왜곡 시키거나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잘못된 조례는 시급히 개정되어야 한다.
이렇듯 지방정치를 왜곡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중앙정치의 종속에 기인한다. 종속의 도구는 당 공천제도이다.
따라서 지방선거의 당 공천제도를 즉시 폐지해야 한다. 당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한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은 요원하다. 지난 5대 지방의회의 구성을 둘러싼 여야간의 힘겨루기와 무상급식을 둘러싼 지방의회의 파행 등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 공천제도가 존속하는 한 지방자치는 당리당략에 의해 훼손되고 지방의원은 주민이 아닌 공천권자의 눈치를 살피는 심부름꾼으로 전략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주민을 위한 지방자치는 물론 주민자치를 할 수 없다. 지방의원과 주민자치위원의 선택권을 주민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공천을 볼모로 지방자치제도를 훼손해서는 안된다.
소수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제도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이젠 주민이 주인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하인이 상전 노릇하는 것은 상전이 상전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전이 상전다워야 하인이 하인다워 진다. 지역의 일꾼들은 자신들이 주민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공복이 되겠다며 스스로 높아지는 것은 지붕위의 원숭이와 같다. 어느 누구도 원숭이를 보고 존경하지 않는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듯 사람은 높아질수록 겸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