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신문=나재희 기자] 고용노동부 직원들이 노동조합의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21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사무실을 각각 방문했지만 양 노조의 반발로 빈손으로 돌아갔다.
정부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양대 노총과 그 소속 노조에 회계 서류 비치·보존 여부를 보고하도록 하고, 기한 내에 보고하지 않은 노조에 대해 이날부터 직접 현장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 노조 측은 자주권을 침해하는 '부당 개입'이라며 맞섰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 노동부 관계자 4명이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하는 행정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방문했다.
같은 시간 민주노총에서 30m 떨어진 곳에 있는 금속노조에서도, 오후 1시경부터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도 행정조사가 진행됐다.
고용노동부는 전날 다음 달 3일까지 2주간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민주노총과 그 소속 36개 노조, 한국노총과 그 소속 3개 노조, 미가맹 노조 1개 등 총 42개 노조에 대해 현장 행정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근로감독관들은 행정조사를 거부·기피할 경우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라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고지하고,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내지를 보러왔을 뿐이라며 협조를 구했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노총에서는 사무실에 들어가긴 했지만 협조를 구하는 데 실패했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는 조합원들이 건물 입구를 막고 항의하면서 사무실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다.
양대 노총이 노동부 행정조사에 따르지 않은 것은 회계서류 겉표지가 아닌 내지를 제출할 의무까지는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조법 제14조는 노조 사무실에 조합원 명부, 규약, 회의록, 재정에 관한 장부·서류 등을 비치하도록, 같은 법 제27조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회계서류를 비치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자료로 내지를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특히 내지에 담긴 내용을 요구하진 않았다는 점에서 노조 자주성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미 회계서류 표지와 비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사진 자료를 제출했으며 내지까지 요구하는 것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입장이다. 내지만으로는 회계를 투명하게 운영 중인지 판단할 수도 없다는 인식도 깔려있다.
이런 이유로 양대 노총은 다음 달 말께 법원에 노동부의 과태료 부과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예정이다. 앞서 노동부는 회계와 관련한 자료를 정부에 제출하지 않은 노조 52곳에 노조법 27조 위반을 이유로 과태료 15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양대 노총은 행정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과되는 과태료에도 이의제기할 방침이다.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노조법 제14조에 규정된) 서류는 이미 비치하고 있고 이를 증명할 사진 자료도 노동부에 제출했다"라며 "그런데도 다시 행정조사를 통해 확인하겠다는 것은 노조에 대한 부당한 행정개입"이라고 비판했다.
이 실장은 근로감독관들에게 조합원 명부와 회의록, 재정에 관한 장부 등의 내지를 외부로 유출하면 노조 자주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제출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도 전달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회계서류 내부를 보려는 것은 법률적인 근거도 없고 노조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내지 제출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조사를 하는 것은 과태료로 노조를 압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