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Enemies)"이라는 자신의 저서 속에서, 열린사회란 전체주의와 대립되는 개인주의 사회이며, 사회전체의 급진적 변화보다는 점차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이루어 나가는 점진적 사회라고 정의하면서 이에 대한 적으로 역사주의적 전체론이라 하였다.
이 말을 쉽게 풀이해보면, 열린사회란 급진적인 혁명보다는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사회를 말하며, 이를 방해하는 적이란 획일적이고 단순한 신념과 그에 사로잡힌 폐쇄성을 가진 개인 또는 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열린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치체제로써 민주주의를 선택하였지만 불행이도 민주주의는 목표가 아니라 열린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어버리는 결과들이 여러 곳에서 존재한다.
사실 1970년대 80년대에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민주주의 회복이었다. 군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자행된 자유의 제한과 인권의 침해 등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존재를 부정케 하는 행위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온 국민들은 인간의 존엄성 확보를 위해 민주주의 회복을 원했고, 그 가운데 민주주의를 위해 온 몸을 불사른 학생들과 정치인, 노동자 농민들의 다소 불법적인 행위를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그들의 눈물과 피흘림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었고 2015년 현재 대한민국 그 어느 곳에서도 민주주의가 부족한 곳이 없게 되었다. 우리가 되찾은 민주주의란 국민 누구나 양심에 따라 자기 자신의 의견을 아무런 제한없이 밝히는 것이며, 국민 누구도 영장 없이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아니하며, 국민 누구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간섭없이 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는 오직 대한민국의 가치와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법률을 위반하면서까지 허용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일 뿐이며, 민주주의란 열린사회를 지향하고자 하는 통로일 뿐이지 그 자체가 지고지선한 절대적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진 시위는 그 폭력성과 무질서함 그 자체로 이미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본다.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무장한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불태우고, 그 마저도 부족한지 종북집단인 민노당 이석기 석방을 요구하는가 하면 대통령 퇴진까지 거론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그 시위를 주도한 단체들이 대부분 민주주의를 앞세웠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폭력도 정당화되고 자기 자신의 인권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인권쯤은 무시해도 된다는 오만한 발상이다.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이 사회는 오직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뿐이라는 낡고 낡은 홉스적 사고방식으로 가득차 있다. 그들이 믿는 이념이란 오직 계급투쟁 뿐이며, 이 사회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뿐이라는 마르크스가 말한 역사주의적 계급결정론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북한 집단이 스스로 그들의 국호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 하면서 마치 그들도 민주주의가 지고지선한 목표와 가치를 갖고 있는 듯 한 착각 속에서 인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9.11테러를 자행한 알 카에다와 이번에 프랑스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를 저지른 IS집단은 그나마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집단들이 갖고 있는 종교적 편향성에 따른 광기가 민주주의를 포용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분명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이 시점에 경찰 버스를 불태우고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신너를 뿌리고 화염병을던지는 등 불법적 시위를 자행한 단체들이 소위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이 알카에다라든지 IS집단과 무슨 차이가 얼마나 있을까?
이들은 그 어떤 명분과 구호를 내세워도 이미 열린사회의 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