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신문=신민수 기자] "최근 20년 동안 세계 모든 문화의 선구자인 한국에서 이런 상을 받게 돼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은 비(非)서구 국가에서 100년 넘게 찾아볼 수 없는 유례없는 큰 업적을 보여줬고, 모든 면에서 세계 문화의 지도자가 되고 있죠."
세계적인 작가 아미타브 고시(69)는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경리문학상 수상작가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밝히며 한국 문화가 이룬 성취를 언급했다.
고시는 "인도에서도 한류가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서구가 아닌 아시아 국가의 문화가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인도 출신 미국인으로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고시는 "지난 100년 동안 유럽 언어, 특히 영어로 작품을 쓴 작가들이 세계 문학계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해왔다"며 "인도의 작가들은 뛰어난 실력이 있는데도 서구 작가들에 비해 인정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행히도 현재 상황이 변모하고 있다"며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데서 알 수 있듯 지평이 변화하고 있고, 인도 작가들도 대중에 존재를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시는 인도, 미얀마, 말레이시아 근대사를 다룬 장편소설 '유리 궁전', 기후 위기를 다룬 논픽션 '대혼란의 시대' 등을 펴냈다. 2008년에는 장편소설 '양귀비의 바다'로 맨부커상(현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현실 문제를 작품에 담아온 고시는 기후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이 과정에 문학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시는 "저는 작가로서 비인간적인 존재, 단순히 동물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도 포함한 모든 존재의 목소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에도 그런 생각이 담겨 있다"며 "비인간적인 존재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에이전시(대행자) 역할을 저희(작가들)가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식물이 되고자 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고시는 생성형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인한 문학 창작 환경 변화에는 비교적 낙관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AI는 매우 흥미로운 도구이고 지루한 작업을 대신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며 "그렇다고 해서 AI가 작가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AI는 인간의 뇌를 따라 하고 복제하지만, 인간은 100% 뇌로만 사고하지 않는다"며 "인간은 신체, 우리가 먹는 음식 등 모든 것을 이용해 사고하기 때문에 저는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체할 거라고 걱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경리문학상은 대하소설 '토지' 등을 남긴 작가 박경리(1926∼2008)의 문학정신을 기려 제정된 상으로,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에게 수여하며 상금은 1억 원이다.
고시는 "'토지'를 읽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영어 번역본을 구하지 못해 다른 단편소설들만 읽을 수 있었다"며 "박경리 작가가 분단이라는 소재를 다룬 점, 지방어(사투리)를 작품에 사용한 점 등은 제게도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했다.
고시가 한국에 방문한 것은 2017년 '서울국제문화포럼' 참석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이달 23일 호텔인터불고 원주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고, 28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리는 '2025 세계 작가와의 대화'에서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