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신문=이현숙 기자] 서울역 서부역에서 1호선 남영역으로 이어지는 청파로 옆 낡은 옹벽이 청파동, 서계동 등 이 일대의 이야기를 담은 '만경청파도(萬景靑坡圖)'로 변신했다.
가로 185m, 높이 3.5~5m의 이 대형 그림은 옛 모습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파동 일대가 변해 온 과정과 약현성당, 손기정공원, 김구 기념관 같은 명소를 재해석하고 골목길 풍경 같은 동네의 일상적인 모습까지 보여준다.
20대 신진작가부터 50대 중견작가까지 9명의 작가가 의기투합해 만들어진 '만경청파도'는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청파동을 배경으로 한 주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의미에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이 작품은 9인의 작가가 기획부터 완성까지 전 과정을 협업, 다름 속에서 조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으로 완성된 것이 특징이다. 작가별로 구간을 나눠 본인이 맡은 영역을 채워 그리는 보통의 공동작업 방식과는 달리, 참여 작가 전원이 전 과정을 함께해 한 그림으로 완성하는 방식은 미술계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사례라고 시는 전했다.
작품 제작은 작가들이 각자 그린 그림을 스캔해 디지털로 조합하고 이것을 인쇄해 벽면에 전사하는 방식으로 작품의 80%를 완성하고 나머지 20%는 현장에서 작가들이 리터칭 작업을 해 생생한 붓 터치를 느낄 수 있다.
박영균 작가는 흰 벽면 전체를 잇는 청색의 라인 속 풍경을 따뜻한 터치로, 나수민 작가는 인물들이 장면 속에 잘 어우러지도록 단순한 표현으로 그려냈다. 동네 곳곳의 살아있는 풍경은 김태헌 작가의 감성적 터치로 마무리됐다. 장자인 작가가 기지 넘치게 표현한 현재 서울역의 모습도 볼만하다.
서울시는 작품 설치와 함께 안전한 작품 감상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청파로 보행로에 설치돼있던 노후한 스테인리스 펜스를 안전한 서울시 우수 공공디자인 인증제품으로 전면 교체했다.
서울역 서편 옛 서부역에서 용산으로 이어지는 일대의 청파(靑坡)동은 '푸른 언덕이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역참제의 첫 번째 역(청파역)으로 암행어사들이 서울을 떠나는 출발지이자 서울로 들어오는 마지막 도착지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고 서울역이 생기고 개발되면서는 골목마다 작은 봉제공장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이런 역사 속에서 청파동 일대는 아직도 옛 서울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건물이자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 90년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인 ‘성우이용원’ 같은 보물 같은 공간들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