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퇴직 고위 공무원들, 먹고 살만 할 텐데 ‘왜?’
1980년대 후반, G5정상회담 이후 저금리.저유가.원화 약세의 ‘3저 시대’가 시작되며 한국경제는 호황기를 맞았다. 1989년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1988년 사회지표’에서는 국민 중 60.6%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1986년도에는 경제성장률 11.2%의 초고성장을 기록하고 이러한 성장세는 3저 호황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1987년(12.5%), 1988년(11.9%), 그리고 1991년(10.4%)까지 이어진다.
취업률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청년실업률이 전체실업률을 초과하는 ‘청년실업률 격차’는 2~3% 수준이었고, 대기업 취업도 어렵지 않았다. 1994년 기준으로 현대그룹과 삼성 그룹의 공채 경쟁률은 각각 6:1정도 수준이었으며,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은 공무원은 대졸 취업자들에게 무시 아닌 무시를 당할 정도 였다.
실제로 1990년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은 경쟁률 3.2:1을 기록했다. 심지어 7급 약무직과 9급 농업직은 ‘미달’이었고 지방 소방사는 80명 선발에 130명이 지원하며 1.3:1의 경쟁률을 보였다. 당시 취업전선에 있던 현재 청년들의 아버지 세대는 당시를 회상하며 "공무원은 시켜줘도 안했다"고 하니,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을 ‘청년으로 살았던’ 기성세대가 마냥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그 기성세대들이, 물러나질 않는다. 2010년대 이후 청년 실업난이 심화되며 인터넷 상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 중 하나는 ‘기성세대’의 철면피 행태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전·현직 고위 공무원들은 커봐야 고작 3:1정도의 경쟁률, 심지어는 미달 수준에 그쳐 ‘자연스럽게 공무원이 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은 은퇴를 하고도 돌아온다.
사무관급 이상으로 일하다 퇴직한 전직 고위 공무원들이 은퇴 후 공공기관을 비롯해 지자체 산하기관과 정치권 선거 사무실에 기웃거리며 간부급 재취업 또는 정계 진출의 기회를 노리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실제로 그들의 재취업 또는 정치권 진출이 어렵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본인들도 그렇게 하는 거다. 애초에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자문이나 양심 따위 없이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특정 단체의 간부가 되어, 그리고 정치인이 되어 청년들의 자리를 빼앗는다.
‘특정 단체의 대표 또는 간부’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경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력과 실력을 동일시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아집, 그러니까 그 ‘관습’이 청년들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영등포구청 등 간부급 공무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 후 구청장 선거 때 선거 사무실을 기웃거린 인사들이 시설관리공단, 문화재단, 문화원, 체육회, 사회복지협의회 등 단체의 장 또는 국장급 간부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며 이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이 지난 2~30년 간 국민의 세금으로 행한 공직 생활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 시간과 그 자리를 국민이 만들어줬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받아간 만큼의 세금이 합리적으로 쓰였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었을까?
공무원 퇴직 후 지자체 산하 기관 단체 등에 요직에 임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새로운 자리에 앉아 국민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사사로운 이권에 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개입하는 것이 정말 국민을 위하는 일이고 임무인지.
더 이상 기성세대의 배경이 합리화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라는 말로 무장하고 ‘세대를 역행하는’ 행태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
실업률을 걱정하고 시민들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시대에 맞는 세대’가 일할 수 있는 관련 조례를 만들고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