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학산방문기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꼽는다면 난 가을이 제일 마음에 든다. 가을에는 오곡백과의 풍요로움과 산의 아름다움을 마음 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참 일할 나이가 되니 온 가족이서 가을여행 한 번 가는 게 왜 이리 힘든지...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가을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거라며 올 해 가을 여행은 체념 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토요일에 파주출판단지와 자유로,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심학산을 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칭얼대는 초등학생 아들이라 할지라도 교회아이들하고 같이 가면 2시간 정도는 쉽게 등반하리라는 예상 속에 온 가족이 가기로 결정하였다.
교회 버스를 타고 자유로를 지나 10시 정도에 심학산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교회 성도들과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산 입구에 뭔가가 꼬물꼬물.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아장아장 기어가고 있었다. 교회아이들 여러 명이서 귀엽다는 탄성을 질러댔다. 왠지 모를 포근함을 느끼며 아기 고양이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재촉하여 산길을 올랐다.
심학산은 나에게 가을이 이제 깊어진다며 낙엽을 하나 둘씩 뿌려 주었다. 산책로에 첫눈처럼 싸인 낙엽을 사그락 사그락 밟아 보며, 햇살 향기에 취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꼬불 꼬불 걸어 들어갔다. 아. 역시 가을 산은 아름답구나. 그냥 또 바쁘다는 핑계로 이 가을, 이산에 안 왔다면 내 인생 귀한 추억이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렸겠지.
심학산은 참 친절한 산이었다. 중간 중간에 있는 나무계단과 구름계단이 있어, 조금 난이도가 있었을 법한 이 산을 아이들도 쉽게 걸어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산은 아니다. 산책로 중간 중간에 부끄러운 듯 살짝 살짝 튀어나온 바위가 있어서, 그 바위를 옆으로 안아가듯 걸어가는 재미가 자칫 밋밋해질 뻔한 산길을 아기자기하게 해주었다.
심학산은 참 매력적인 산이었다. 노란 잎과 푸른 잎과 마른 잎을 지나쳐 가다가 갑자기 만난 그것은, 붉은 잎, 단풍잎이다. 심학산 중턱까지 오면서 뭔가 아쉬웠던 내 앞에 나타난 단풍잎은 내게 갈증을 일으켰다. 물을 벌컥벌컥 마실까하다가 한모금 음미하며 마시니 왠지 여유가 느껴졌다. 시야 전체를 채운 단풍잎도 좋지만 이렇게 홀로 화려한 나무 한그루가 내게는 동양화의 여백가운데 찍힌 꽉 찬 점 하나 같았다.
그러다 어리 버릿 자유로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 이제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내려가야 할 시간. 파주 출판단지의 건물들이 신간 코너의 책들처럼, 아기자기한 색깔로 내게 내려가면 책 한권 사서 읽어보라고 유혹한다. 멀리 푸른 하늘과 논밭, 그리고 하얀 마쉬멜로처럼 모아져 있는 볏짚을 바라보며 내년에도 꼭 가을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 먹었다.
글: 김덕선(영등포신문 편집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