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더십 연구소 소장
정치학 박사 이경수
인조 임금 당시 병조판서였던 최명길(1586~1647)은 주화론자였다. 원래 최명길은 선조 임금 재임 시 불과 약관의 나이로 소과와 대과를 한꺼번에 합격할 정도로 천재성을 인정받았으나 광해군 당시 북인이 득세하면서 서인 출신인 최명길은 크게 쓰임을 받지 못하자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1등공신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최명길은 인조 임금을 모시면서 후금(후일 청나라)을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쳐 다른 신료들로부터 의리와 지조가 없는 사람이며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 임금은 허겁지겁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하였고, 이에 최명길은 김상헌을 선두로 한 척화론(청나라에 끝까지 대항해서 싸우자는 주장)에 반대하여 유일하게 주화론을 펼쳤다.
최명길의 논리는,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국 대륙의 신흥 강대국 청나라에 대항하여 싸우자면 결국 죽어가는 것은 일반 백성들 뿐이니, 백성들을 살리고 왕실의 보존을 위해서는 잠시 동안의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 긴 안목으로 보아 최선이라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최명길은 역사를 통해 삼학사(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끌려간 김상헌, 윤집, 오달제 등 척화론자)에 비해 평가절하 될 수 밖에 없었지만, 결국 중국 대륙은 청나라에 의해 통일 되었고, 인조 이후 등극한 효종의 북벌계획을 준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니 그의 혜안에 비해 우리 역사에서 저평가되고 평가절하된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자존심을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지난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 4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장관은 2015년 12월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잠정적으로 무기한 연기한다는 합의를 하였다. 그러면서 한 장관은 추가 설명을 통해 전작권 전환을 무한정 연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2020년 정도에는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일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 위반이라는 지적에서부터 국가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이니, 심지어는 매국이라는 극단적인 용어까지도 동원하여 집중 공격을 하고 있다.
원래 전시작전 통제권은 지난 1950년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한국군에 대한 모든 작전통제권을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에게 위임한 것이 시초였다. 당시 이승만 정부로서는 북한군에 맞서 효율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전작권이 한국군에게 이양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자주국으로서의 위상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동안 북한이 늘 남북한 직접 대화를 회피하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이며, 휴전선 155마일에 무려 120만 대군이 일촉즉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에서 전쟁 복구와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단 한푼의 돈이 필요한 시기에 막대한 국방비를 절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주한 미군을 남한에 붙잡아 두는 것이었고, 주한 미군의 철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가 바로 전작권을 주한 미군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어찌보면 2014년 현재 스스로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했다고 자랑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고 계면쩍은 사안 중 하나가 바로 자국의 방위를 타국의 손에 맡겨둔다는 것임은 분명하나 핵무기와 강력한 미사일, 몇 배에 이르는 잠수함과 특수부대로 무장한 북한의 군사도발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고육지계임을 감안한다면 과연 국가의 자존심이 우선인지 국익이 우선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자존심을 앞세워 당장 전작권을 전환한다면 아마도 당장 적게는 약 300조원에서부터 많게는 460조원의 국방비가 추가로 필요할 것이다. 더구나 요즘 한참 문제가 되고 있는 각종 군수 납품 비리가 박근혜 정부로 하여금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을지도 모른다.
약 350년 전 최명길의 주화론에 힘입어 효종의 북벌계획이 싹을 띄울 수 있었듯이, 차근차근 국방력을 키워가야할 시기이다. 국가의 자존심을 팔았다는 등 매국이라는 등의 지나친 비판은 또 하나의 최명길과 같이 역사에서 평가절하된 사람을 낳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