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신문=이천용 기자] "땅, 땅, 땅…."
지난 13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 서울교통공사 군자차량기지. 2만8천여㎡(약 8천400평)의 공장에 들어서자 열기와 기름 냄새가 훅 끼치며 요란한 망치질 소리가 쉴 새 없이 귓전을 때렸다.
서울지하철 1·2호선 전동차 51대의 보금자리인 군자차량기지는 15일로 50년을 맞는 서울지하철과 반세기의 역사를 함께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지하철 1∼8호선, 9호선 2·3단계 구간 288개역을 관리하면서 군자차량기지를 포함해 11곳의 차량기지를 운영한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6.4도. 군자차량기지 근로자들은 기름때가 범벅된 흰색 방진복과 마스크로 무장한 채 구슬땀을 흘리며 전동차를 정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크레인으로 열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입사 10년차 최창민(29)씨도 이들 중 한 명이다. 최씨가 모는 20t급 대형 크레인은 폭 3.1m, 높이 3.8m의 객실을 하나씩 들어 올리며 차체를 분리하고 작업이 끝나면 다시 조립한다.
최씨는 자신을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불렀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이곳에 취직한 그는 "많은 사람과 물건을 이동시키는 바퀴의 역동적인 모습에 끌렸다"고 웃어보였다.
지난해 서울교통공사의 안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은 승객 10억명당 총 사망자 수가 0명으로 세계 17개 주요 도시의 지하철 중 가장 적었다. 1위인 미국 뉴욕 지하철은 82.5명이었고 일본 도쿄는 0.92명이었다.
차량기지는 승객 안전의 최전선이다. 단 하나의 나사라도 잘못 조여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근로자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서울 지하철은 50년 동안 차량 정비 불량으로 인명 사고가 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서울교통공사는 2∼6년마다 4만5천개가 넘는 전동차의 부품을 모두 분해해 일일이 정비한 뒤 문제가 있는 부품을 교환하고 재조립하는 '중정비'를 약 20일 동안 한다.
차량 자체 무게만 200t을 훌쩍 넘기는 데다 승객과 짐까지 싣고 시속 80㎞로 매일 달리는 만큼 조그마한 부품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단단한 쇠바퀴도 세월에 닳아 쇳가루로 스러지기 마련이다. 전동차 바퀴는 열차가 달릴 때마다 선로와의 마찰로 조금씩 마모되는데 심해지면 탈선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울퉁불퉁해진 바퀴는 선로와의 접촉을 부드럽게 해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게끔 표면을 매끈하게 깎는 '삭정' 작업을 거친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이다.
최씨는 "정비를 마친 열차가 이상 없이 잘 달리는 것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면서 "내가 하는 일이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저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모두 작은 실수 하나 없도록 주의하며 일하고 있지만 업무 자체가 만만치 않다.
전동차 한 대에 22개가 들어가는 객실 연결 부품만 20㎏다. 손잡이로 삼을 만한 것도 없어 직접 들어보니 허리에 부담이 됐다.
이렇듯 무거운 부품을 매일 옮기고 허리를 굽힌 채 쪼그려 앉아 작업하기 일쑤인 탓에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근로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근로자들은 최근에 작업 인원이 줄어들면서 업무 강도가 커졌다고 호소한다. 업무 강도가 커지면 사고 발생 가능성도 커진다는 게 이들의 걱정이다.
서울 지하철의 '반백살 생일'이 이들에게 뿌듯한 날이기도 하지만 마냥 뿌듯하기만 한 날이 아닌 이유는 또 있다.
지난 두 달간 서울 지하철 연신내역·양재역·삼각지역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3명이 감전 등으로 잇따라 숨지는가 하면 차량기지 등에서 일하던 8명이 혈액암 진단을 받기도 했다.
최씨는 "입사 이래 가장 주눅 든 시기가 지금인 것 같다"며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유기용제가 공장 안에서 미세한 비산 물질이 되기 때문에 혈액암을 유발하지는 않을까 가족들도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소박할 수도 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안전하고 화목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며 웃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