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승 영등포 UPF평화봉사단장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 학교란 ‘훈육의 장’이 아닌 ‘범죄의 온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과거 교칙과 규율로 엄한 교육이 진행되던 ‘그 학교’를 생각한다면 모름지기 착각에 해당할 것이다.
근년들어 무너지는 일본교육을 일컬어 ‘학교붕괴’란 말로 풍자되는 이웃나라가 결코 남의 일은 아닐 것이다.
대로변에서 학생들의 흡연을 해도 누구하나 뭐라 하질 않으며, 여중고생들의 미니스커트가 범람해도 어른들은 ‘개인의 취향’으로 치부하기 바쁘다.
금연지역인 학교에서 어른 심지어 중고생들이 흡연을 해도 누구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드물정도다. ‘학교개방’이라는 이유로 수위실이 없어지고 있으며, 이미 학교나 청소년단체의 교외생활지도도 아련한 추억 쯤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같은 원인이 과연 우리사회가 ‘교육’에 대한 열의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교육에 대한 열의는 과거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지금도 특목고다, 해외연수다 하면서 강남교육 1번지를 외치며 일어나는 사교육 광풍은 눈뜨고 못 볼 지경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교육환경은 이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백주대낮에 학교운동장에 성범죄 전력자가 들어와도 누구하나 제지받지 않고, 우리의 어린학생이 납치되어 성폭행 당하는 시대를 맞고 있으니 말이다.
그 많은, 그리고 값비싼 사교육을 통해 가르켜왔던 것은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것이 결국 교육의 목적이지만 우리는 그 기저의 가장 중요한 인간교육은 혹 저 뒷전에 둔 채 극단적, 이기적 교육에 함몰되어 있지 않는지 이제는 뒤돌아 볼 때가 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 2009년 통계에 잡힌 이 땅의 사교육비는 21조원 6천억원에 육박한다. 이런 막대한 교육에 대한 투자에 비해 정녕 우리 아이를 지켜줄 학교안전망에 대한 투자는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
그 사건이 있은 후 많은 사람들은 ‘그 교육현장에 건장한 수위아저씨 한명만 상주하고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인건비 절약과 인력운용의 용이성 ‘이라는 이유로 수위실은 숙직실로 바뀌고, 훈육의 상징이었던 수위아저씨는 일당제 용역알바로 바뀌어버렸다. 교육 당국에서는 그 사건이후 휴일에도 용역알바를 쓰도록하겠다는 미봉책을 또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교육에 투자하는 21조원 규모에 비하면 이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사건이 일어난 특정학교를 넘어 우리사회 모두가 반성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교육에 대한 개념을 다시 세워야 한다. 우리사회 21조원의 사교육비는 내 아이만 잘 지키우자는 그래서 결국 이기주의의 비교육적 방식임을 금번 사건을 통해 인식되어야 하겠다.
적어도 그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우리학교 안전망에 투자해 모든 아이들이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했다면 금번과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까? 타인을 배려하는 가장 교육적 방식 말이다.
수위실을 부활시켜야 한다. 반드시 교직원에 준하는 학교직영 체제로 24시간 학교를 굳건히 지키고 무너진 규율을 바로잡아야 한다.
아이들의 흡연, 무분별한 이성교제, 폭력과 집단괴롭힘 등 진정 이 나라의 ‘학교붕괴’를 예방할 근접관리가 절실한 때다. 이와 함께 아동지킴이집에 대한 세심한 관리도 필요하다.
최소한 한 학기 1회 이상 학교장 주최 간담회도 개최하면서 아이들에게 지킴이집 방문교육도 시켜야 한다. 여기엔 우리 모두가 부모의 심정이 되어야 한다.
상습 성범죄자에 대한 엄한 법적 대응도 필수적이다. 아동성범죄자, 근친간음자, 재범이상 성범죄자에게는 전자팔찌를 넘어 근본적으로 ‘화학적 거세’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다. ‘내마음 속에 악마가 있다’는 금번 성범죄 용의자의 고백과 같이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억제시켜 줄 ‘성범죄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절실한 제도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학교는 더이상 범죄의 온상이 아닌 훈육의 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참교육’이다.
우리 가정 그리고 학교, 이 사회가 합심해 백년대계의 멋진 작품을 만들 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내일이면 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