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신문=이천용 기자] 서울의 한 구의원이 시의원에게 1억대의 수의계약 청탁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방의회의 청탁·이권 개입 문제가 여전히 만연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민의힘 소속 A 서울시의원은 지난 4월 3일 민주당 소속 B 영등포구의원을 자처하는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녹취록에 따르면 남성은 "초면에 죄송한데 부탁 말씀을 드려도 될까 한다"며 자신의 지인이 A 시의원 지역구 한 고등학교와 전자칠판 납품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이 남성은 "(해당) 고등학교로 배정된 (관련 예산이) 1억2천만원"이라며 "아는 동생이 있는데 소개를 좀 드리고 협조를 좀 구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A 시의원은 "(해당) 고등학교는 제 말을 안 듣는다"며 거절 의사를 밝혔고, 결국 통화는 진척 없이 종료됐다. B 구의원과 A 시의원은 소속 정당이나 지역구도 다르고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탁 대상이 된 고등학교는 같은 달 한 업체와 '전자칠판 구매'와 '전자칠판 이동식 거치대 구매' 수의계약을 맺었다. 금액은 각각 9천427만원과 1천320만원으로 총 1억747만원이다. 이 업체가 B 구의원의 지인 업체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B 구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학교와 계약을 체결한 업체를 모를 뿐 아니라, A 시의원에게 연락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 시의원이 통화했던 전화번호는 B 구의원의 번호와 동일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청탁금지법 제23조에 따라 부정청탁을 한 사람은 시도만으로도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부정청탁을 받고 실제 직무를 수행한 공직자는 같은 법 제22조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지방의회의 뿌리 깊은 청탁·이권 개입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8∼11월 전국 광역자치단체 17곳과 기초자치단체 226곳의 공무원, 의회 사무처 직원, 산하 기관 임직원, 시민단체, 지역 주민 등 8만981명을 조사한 결과 5명 중 1명꼴인 19.38%가 지방의원이 부당한 업무 처리를 요구하는 것을 직접 당했거나 봤다고 답했다.
11.01%는 공공사업을 맡길 업체를 선정할 때 지방의원이 부당하게 관여하는 걸 봤다고 했고, 7.08%는 지방의원이 사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지자체 인허가 정보를 부당하게 요청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전북도의회 한 도의원은 도내 특정 업체의 30억원대 전력 절감 사업을 공무원에게 강요한 의혹이 논란에 휩싸였다.
경남 고성군의회에선 법무사인 군의원 배우자가 고성군과 2020년부터 3년 동안 206건의 수의계약을 맺어 문제가 됐다.
대구 중구에선 구의원이 유령회사를 만들어 수의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이, 경기 평택에선 시의원 아들 관련 업체가 보건소 용역을 따냈다는 의혹 등이 불거졌다.
서울시의회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보다 시의원이 지역에 줄 수 있는 예산이 훨씬 많다"며 "청탁이 유독 많은 사업의 경우 (시의원이) 예산권을 집행하지 못하게 하거나 특정 업체를 지정해 계약하는 수의계약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방의회의 자정 노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수의계약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의 정비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동명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은 "수의계약을 사후에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