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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이경수 칼럼] 전쟁을 막은 이 땅의 청년들

  • 등록 2015.09.16 16:24:27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50330일 북한 김일성은 부수상이자 남로당 총책이었던 박헌영을 대동하고 모스크바로 날아가 스탈린에게 조선반도 통일을 위한 남침 계획을 설명하고 승인을 받았다. 김일성이 굳이 소련 방문에 박헌영을 대동한 이유는 바로 박헌영이 주장한 북한의 남침 공격시 남한에 있는 20만 남로당원들의 호응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남로당 총책인 박헌영은
1948년 월북을 한 이후 김일성에게 남한에는 100만 이상의 공산당을 지지하는 잠재적인 세력이 있으며, 그 중 남로당에 가입한 20만 핵심 요원들이 언제든지 조국통일전쟁에 호응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있다고 큰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김일성은 북한이 남침할 경우 미국은 결코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였고
, 박헌영은 20만 남로당원들의 내부 호응을 설명하였는데, 후일 밝혀진 기록에 의하면 스탈린은 김일성이 설명한 미국의 불개입설보다는 오히려 박헌영이 설명한 20만 남로당원들의 내부 동조를 더욱 관심있게 듣고 남침 계획을 승인하였다고 한다.

스탈린의 생각은 남침 전쟁 발발시
3일 이내에 남한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적어도 2주 이내에 남한 전역을 점령할 수 있다는 근거를 바로 남한 내부에 있는 20만 남로당원들의 내부 호응에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설사 미국이 개입하더라도 남한 내부의 혼란과 분열이 곧 전쟁의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는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6.25전쟁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개전 초기
3일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2주 안에 남한 전역을 점령하겠다는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이는 자칭 20만에 달한다는 남로당원들이 호응하여 점령지구에서는 곧바로 인민위원회가 설치되고 점령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는듯 하였으나, 그보다 100배나 되는 젊은이들이 속속 자원입대를 하고 심지어는 고등학생 중학생까지 나서 학도의용군을 편성하여 격렬하게 저항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을 필두로 한
UN군이 빠른 시일에 한반도로 파견된 것이 6.25전쟁의 승리 요인인 것을 부인할 수 없으나 더욱 중요한 전쟁 승리 요인은 바로 이 땅의 청년들이 조국을 지키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참여가 가장 큰 것이었다.

지난
84일 북한군이 매설한 목함지뢰로 인해 우리 군 2명이 다리를 잘린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측은 대북 방송을 재개하였고, 북한은 이에 질세라 820일 우리 측에 고사포와 직사포로 공격하는 등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824일 북한은 먼저 우리 측에 회담을 제의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이 이번 사건을 해결할 조건으로 대북방송 중단을 요구하였다. 어찌보면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은 이 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내건 조건치고는 너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작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각종 방송에 나와 대북방송이 대북 심리전에 끼치는 내용과 효과 등 중요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하였으나, 정작 북한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 민 것은 그까짓 대북방송이 무서워서가 아닌 것이다.

정작 북한 정권이 무서운 것은 바로
8.4 목함지뢰 사건과 뒤 이은 전쟁발발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우리 청년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올린 대북 강경 메시지였다.

전역을 불과 몇일 앞둔 군인들은 스스로 전역을 연기하겠다고 하였다
. 또한 전역을 하였지만 언제라도 나가 싸우겠다면서 개구리복(예비군복)을 꺼내 손질하는 청년과, 심지어는 결혼까지도 뒤로 연기하고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겠다는 예비신랑과 그를 격려하는 예비신부의 사진과 글이 홍수를 이루자 북한 정권은 곧바로 전쟁 의지를 상실한 것이다.

북한 정권은 지난 광우병 사태
, 세월호 사건 등에서 나타난 반정부 세력들이 이번 사건에서도 나타나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고 체제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주도해 줄줄 알았는데, 정작 이번 사건에서는 오히려 북한의 침략근성을 질타하고 오히려 북한이 오판 시 결연히 나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으니 더 이상 사태를 확산할 의욕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던 이번 사건을 해결할 남북 당국 회담에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요인은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도 있었겠지만 이 땅의 청년들이 보여준 단호한 의지와 결의가 가장 큰 힘이 되었다
.

이 땅의 청년들이 제2의 동족상잔을 막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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